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황제(작약만가: 불환곡) (문단 편집) == 평가 == '''작약만가 시리즈의 [[만악의 근원]]''' '''[[양파|까고 또 까도 까일 게 또 나오는]] 전천후 [[어그로|어그로 탱커]]'''[* 실재로도 황제가 등장할 때마다 댓글의 태반이 황제 욕(...)과 비판이라는게 그걸 증명하며, 잊을 법할 때마다 스토리 전개 도중 황제의 단점이나 잘못이 갱신된다.] '''겉만 멀쩡할 뿐 속은 [[황제(작약만가: 서리꽃)|자신의 가장 못난 둘째아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인간말종]]''' 저 위와 아래에 기술되어있듯이 정말 독자들에게 쉼 없이 까이며 작중 인물들도 그를 은연 중이건 대놓고건 비판할 정도로 [[비하 캐릭터|전적이 안 좋은 인물]]. 간단히 요약하면 심각한 이기주의자라고 볼 수 있다. 그의 성격에 [[내로남불]]은 기본 패시브로 장착되었으며 심각한 자기합리화와 강박, 의심병, 이기주의, 자신의 대외적인 평판에 대한 집착, 권력에 대한 집착이 모두 뭉치면 '''"겉은 멀쩡해도 속은 썩은 인간이 나온다"'''의 산증인이다. 황위에 오르기 전이나 후나 보여지는 반사회성적인 측면이나 공감대 부족 등도 이런 성질 때문에 나온다고 볼 수 있다. 인성부터가 이미 좋지 않은 싹수를 보였는데 황제 자리를 탐내느라[* 선황제의 후궁 소생으로 애초부터 황위계승의 정통성이 없었다. 그래서 내부로는 정통성에 방해되는 어머니와 형제들을 정리해야 했고, 외부로는 전쟁이라는 공적을 쌓아야 했다.] 여기저기에 전쟁을 벌이고 [[패륜|정통성을 흔들 건덕지가 있는 어머니 혜공경비까지 음모에 몰아넣어 죽게 만들고]],[* 이런 패륜을 저지른 이유 중 하나는 황제가 황자이던 시절의 황후와 관련이 있다. 후궁 소생 황자가 황제의 후계자로써의 정통성을 갖추려면 황후의 자식으로 입적되어야 한다. 하지만 당대의 황후는 황자였던 황제를 본인의 자식으로 입적시키는 걸 끝까지 거부했다. 그로 인해 황제는 황위 계승의 제대로 된 정통성을 지니지 못해, 전쟁과 가족 척살로 다른 기반을 쌓는 수밖에 없었다.] 자기 잘못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경솔하고 자기중심적 사고를 끝없이 보여준다.[* 딸만 낳은 후궁들은 홀대하고 자기를 만족시켜 줄 정상적인 아들을 낳은 롱희는 너무 지나치게 우대하면서, 내명부의 위계질서도 흐트리고 후계와 관련된 분란을 일으키며 황후와 대놓고 척을 졌다. 이런 자기중심적 사고로 인해 조심성없이 일을 저지르는 경우가 잦으며, 여차하면 자신의 가장 큰 친위세력이 될 수도 있었던 황후를 결국 가장 큰 적으로 만들고 말았다.][* 그나마 일대일 대면이 가능할 정도로 황제와 가까운 관계인 [[태중(작약만가: 서리꽃)|태선관]]이 그렇게 자기 식대로만 주변인을 판단하면 안 된다며, 롱희와 소거의 건을 예시로 들어가면서까지 일침을 날렸지만 귀담아듣지도 않고 고집스럽게 자신의 태도를 밀고 나가는 패착을 선보인다.] 게다가 자기 아들 중 2황자가 '''황실 사냥터를 관리하는 지방 귀족(가백문씨)을 상대로 [[인간 사냥]]을 벌였는데도''', 자신의 치세에 오점 남기기 싫다는 이유로 이를 묵인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것도 참으로 멍청한 짓이였는데 황제가 이 사실을 묵과하지 않고 빌미이자 약점으로 삼았다면, 그토록 경계하고 치워버리고자 했던 황후와 그 친정인 숙정씨 일파까지 숙청하는 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숙정씨의 권력도 필요하고 오명투성이인 아들을 뒀다는 사실을 남기기도 싫고, 아들을 처벌하는 인간이 되기도 싫었는지 이 심각한 사태를 그냥 묵인해버렸다. 친족의 만행을 눈감아버리는건 [[암군]]들의 전형적인 태도다. 참고로 황제처럼 문제있는 아들내미를 끝까지 감싸준 왕으로는 조선의 [[선조(조선)|선조]]가 있다. 이 양반도 작약만가의 봉림과 비슷하게 망나니 왕족이었던 아들 [[임해군]]의 심각한 과오를 제대로 법으로 다스리지 않고 감싸는 잘못된 면모를 보이긴 했지만, 최소한 임해군에게 그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질책은 했고 그 과오를 고려해서라도 절대로 임해군을 세자로 책봉하지 않았다.] 심지어 이 과정을 도와준 강씨 가문에게서 [[경비 강씨|후궁 하나]]를 차출해가는 미친 짓도 선보인다(...)[* 강씨가 황가가 사고친 부담을 대신 져준 대가로 한 정략혼임을 감안하면 아주 이상한건 아니다. 현실 중국엔 단순 정략혼도 아니고 [[당현종|황제]]가 자기 아들의 [[양귀비|아내]]를 탐해 후궁으로 취한 사례가 있을 정도다.] 또 주변의 모든 대상을 사실상 도구, 혹은 필요 없는 것, 적대자 셋 중 하나로만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나마 친밀한 관계인 롱희와 운, 소거의 경우 작중에서 황제에게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를 보면, 결국 그들 역시 황제에게 있어선 도구일 뿐이라는게 밝혀진 바 있다. 이들 외에 친밀한 관계인 태선관(훗날 태중)도 자기 입장이 불편해지면 언제든 내칠 가능성이 높다.] 딸들은 후계를 물려받을 수 없으니 쓸모없다고 여기며[* 힘들게 자신의 첫아이를 낳은 덕빈의 출산 직후에 찾아가 "아프다고 온갖 난리를 치더니 겨우 딸이냐"라는 소리를 하기까지 한다.], 그토록 총애했던 롱희나 운, 소거도 권력을 지키기 위해 구금하거나, 롱희의 심정은 생각치 않고 소거를 황후의 양자로 넘겨주는 등의 물건 다루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 덕빈의 말대로 롱희와 자식들을 진심으로 사랑했다면, 방해물인 황후와 2황자부터 물불 안 가리고 치워버렸을 것이다. 혹은 황제 본인조차 어쩔 수 없는 정치적 상황 때문에 일단 작중 행적과 똑같은 전철을 밟아도, 어떻게든 다시 소거를 롱희에게 돌려주려는 식으로 최소한 머리쓰는 시늉이라도 보였을 것이다. 근데 그런 것도 없다(...)] 애초에 황후의 양자로 운과 소거를 입적시키고 양육은 롱희에게 맞기면, 황후는 2황자를 치워버리고[* 황후의 성격상 2황자를 대신할 대체제가 있었다면, 제아무리 친아들일지라도 진즉 2황자를 치워버렸을 것이다. 이는 작중에서 황후가 직접 인정한 사실이다.] 운을 태자로 삼아 원하는대로 태후로서의 권력을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이로 인해 태자의 친모인 롱희를 치울 순 없으니 적당히 보호해주다가, 소거와 함께 송하로 돌려보냈을 가능성도 있다. 결국 이런 이기적인 태도로 타인을 대하면서 황제는 자신에게 순애를 바치는 여자를 갈망하는 것과는 별개로, 정작 황제의 여자들 중에서도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되었다'''.[* 황후나 후궁들이 황제에게 조심하거나 총애를 갈구하고 잘 보이려드는 건, 모두 황제의 눈밖에 나지 않아야 황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정확히 덕빈 같은 경우는 과거엔 황제를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가면 갈수록 자신의 아이를 낳은 여인조차 배려하지 않고[* 소의를 막 낳은 덕빈에게 찾아가 "아프다고 비명 지르고 난리를 치더니 고작 딸이다"라는 희대의 무개념 개소리를 지껄이기까지 했다. 아무리 남자라서 출산의 고통에 대해 무지하고, 가부장제 사회의 영향으로 여성의 삶을 하찮게 여긴다지만 이는 정말로 도를 넘는 망언이다. 현대 사회에서도 임신 혹은 출산 과정에 까딱 재수가 없으면 산모의 생명이 위태로워지거나 중대한 후유증을 얻을 수 있고, 전근대 사회의 여성들은 말 그대로 아이를 낳기 위해 자기 목숨을 걸었다. 그런데도 덕빈은 열 달 동안 피를 말리고 뼈와 살을 깎아 가며 황제의 첫 아이를 품어 낳은 것이다. 그런데 그 노고는 안중에도 없고 아들이 아니라 실망스럽다는 말 따위나, 그것도 저토록 저열한 방식으로 하고 있으니 인성 자체가 글러먹었다는 증거다.], 자식조차 쓸모[* 황위를 이을 수 있을 때, 멀쩡하게 자라 그 아비인 자신이 결점 없는 사내임을 증명해줄 수 있을 때 등등]가 있을 때에나 아낄 뿐이며[* 즉, 황제가 멀쩡한 아들인 운과 소거를 아낀 이유도 그냥 '''쓸모가 있어서''' 그랬다는 것. 운과 소거도 딸로 태어났거나 봉림처럼 모자란 구석이 있었다면, 황제에겐 쓸모없는 아이에 불과할테니 결코 취급이 좋지 않았을 것이다. 황제에게 가장 큰 편애를 받은 운조차 이 사실을 잘 알고, 속으로 한탄아닌 한탄을 하며 황제를 원망할 정도.], 자신은 진심을 주지도 않으면서 무조건 순종하고 인내하는 여자를 바라는 황제의 태도에 염증을 느껴 애정이 식어버렸다. 본편에서 덕빈이 자살 직전 황제에게 '''"폐하께서 사랑하시던 협란은 그 사랑이 거두어졌을 때 죽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없었어요."''', '''"[[팩트폭력|폐하의 롱희가 폐하를 진정히 사랑할까요?(중략) 이 황궁에 폐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같은 소리를 할 정도. 그야말로 황제는 자신을 사랑했던 사람조차 학을 떼게 만드는 행동을 일삼는단 소리. --[[자승자박|지 복을 지가 차는 놈이다]]-- 이러니 아내들도 아예 그를 사랑하지 않고 똑같이 권력의 도구로서 보거나, 사랑했더라도 황제의 그런 태도와 경향성에 실망해서 끝내 그 마음을 거둬버릴 수밖에...] [[무한이기주의|정작 그런 주제에 그 자신은 여전히 자기에게 주기만 하는 사람들만을 원하며]] [[답이 없다|자기가 방식을 고쳐야한다는 생각도, 문제를 지각하려는 시도도 안 하고 있다]] . 53화에서 황제의 본성을 알고 오만정이 떨어진 운에게 최근 아버지라고 안 부르는 것 같아서 섭섭하다고 하고, 이에 운이 아버지라고 불러주자 너만이 끝까지 내 곁에 있어준다고 말한다. 황제의 유언이 운이 보고 싶다는 것이기도 했다는 것을 고려할 때, 롱희와 운에 대한 애정이 진심이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너무 자기중심적이고 삐뚤어진 사고방식 때문에 결국 제 손으로 다 내쳐버리고 말았다는 것. 결국 이런 단점들이 합쳐저서 '''겉보기엔 멀쩡해도 속은 문제 많은 인간'''이 탄생했다는 평가가 지배적. 하도 욕먹을 요소들로만 중무장해서 일각에선 작가가 의도적으로 욕받이 캐릭터로 만든 것 같다는 평도 있을 정도. 한편으로는 53화에서 보여준 정치가적 면모 때문에, 똑똑해서 왕 자리 차지했다는 평이 나오기도 한다.[* 작중 황제는 어느 정도는 머리를 굴리며 이득을 얻어내고 정적들을 견제하려는 시도를 나름대로 보여주기도 한다. 애초에 어머니까지 처리하고도 황위 자리를 차지했을 정도니 인성과는 별개로 머리 굴리는 능력 자체가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는 편. 그러나 후술된 것처럼 아주 [[바보]]는 아닐 뿐 정치가로써도 지배자로써도 가장으로써도 제대로 머리를 굴려야 할 때에 못 굴리려 자멸의 함정을 파는 경우가 더 많은 --그러니까 지략스텟이 애매한-- 케이스. 애초에 나중에 공격받기 좋게 여기저기에 어그로 끌어대는 행각을 하는 그의 태도부터가 신중하고 현명한 사람이라면 나올 수 없는 처사다.] 그러나 여태까지의 행적을 잘 뜯어보면 자기 손을 더럽히지 않는 것에 지나치게 치중하는 점과 비뚤어지고 자기중심적인 사고로만 일처리를 하는게 합해져서 황실 내외부적으로 그가 싸질러놓은 문제들이 장난 아니게 많은 상황(...)이기에 권력과 이해타산에 민감하고 어느 정도 그걸 읽는 눈은 있지만, 장기적인 미래설계에 관한 능력과 대국을 보는 식견이 후달리고 진정으로 고쳐야 할 고질적인 문제점을 못 고쳐서[* 그 전에 [[눈새|그걸 눈치도 못 챈다.]] 옆에서 알려줘도 눈치 못 챈다.] 문제를 낳고다니는지라 결코 온전한 의미에서 현명하다 볼 순 없는 인물.[* 그래서 독자들 중에선 황제는 '''자기 불리한 건 절대 보지 않으려 하는 인간일 뿐이다'''라고 평했다.] 인성적으로 나쁜 인간인건 확실하나 자기방어적인 태도가 매우 강해, 자기가 나쁘게 보이는 것도 나쁘게 여겨지는 것도 정말로 싫어한다. 늘상 책임을 타인에게 떠넘기기만 하면서도 반성도 성찰도 없고, 이기주의자이며, 타인을 장기말처럼 요리조리 굴리면서 자기는 자기의 패가 된 타인의 목만 뒤에서 죄는 방식만 택하는 것도 이런 이유 탓이다. 참으로 [[위선자]]가 따로 없다(...)[* 독자들이 내놓은 추측 중엔 황제의 기가 막힌 자기방어적 + 위선적인 태도는 황제 스스로가 더러운 짓을 한 인간[* 황제 자리에 오르기 위해 친어머니와 형제들까지 죽였다.]임을 잘 알기에 저러는게 아니냐는 추측도 있다.] 결론적으로 황제는 스스로 자신의 무덤을 너무 많이 팠다. 황제는 의심많은 특유의 성격상 듣기 좋은 말만 들었기 때문에 태황의 백성들의 삶이 자세히 묘사되지는 않았으나, 백성들을 대하는 황제를 비롯한 고위층들의 태도와 작중 생활상의 묘사를 보면 이 백성들의 삶이 절대 좋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확실한 건 태황의 멸망테크가 절대 '후대 2황자가 황위에 올랐기 때문이다'로 결론지을 수 없다는 것이다. 태황은 이미 내부적으로 윗선인 지도층이 너무 썩어 있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통일신라 말기로 할 수 있는데[* 실제로 유사점이 너무 많다. 신라 말기 고위 귀족들은 썩을데로 썩어 있었고, 왕족들의 혈통은 심각한 근친혼으로 피가 썩어 문들어져 후계조차 제대로 세울 수 없었다.] 만약 서리꽃에서 리빈이 정권을 잡지 못했다면 태황은 완벽하게 멸망했을 것이다. 태황 자국민은 물론이고 점령지의 흡수된 민족까지 모조리 탄압했으니 반란이 안 일어나고 버틴게 용하다. 운이 죽을 때 황궁 내의 하녀와 하인들은 물론 일부 백성들마저 울면서 그를 선인이라 부르는 것을 보면, 이미 수도에서조차 황실은 민심을 잃어가고 있었고 지방이라고 황실의 횡포와 그로 인한 반감이 적었을 확률은 거의 없다. 오죽했으면 태정군이 운에게 '이 태황이 바뀌길 바랬다. 당신(1황자 운)의 세상에선 그럴 수 있을 거라 자부했다. 그러나 이 태황은 결국 나를 버렸다.' 라고 할 정도다. 이미 나라를 위해 희생하려고 했고 희생할 수도 있었던 유능한 태정군과 태선관[* 훗날 태정관 장씨.]마저 이런 황제와 태황의 모습에 질려, 황실에 대한 충성을 저버리고 나라 자체를 떠나려고 했던 것만 봐도 황제의 편이 얼마나 적었는지 잘 알 수 있다. 더구나 오로직 황제만을 바라보며 후궁으로서의 본분에 충실했던 [[덕빈]]을[* 과거 협란이 덕귀비였던 시절 한 후궁이 기형아를 낳았다는 이유로 본인이 죽거나 아이를 죽이라는 교지를 받자 혜화비와 경숙비와 더불어 덕귀비까지 부르며 도움을 요청한 걸 생각하면, 당시까지만 해도 협란은 위기에 처한 후궁이 도움을 구할 곳으로 떠올릴 만큼의 인덕이 있었거나 혹은 그렇게 평가받는 사람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현재의 협란은 [[롱희]]와 [[성빈]]을 모함하여 죄를 뒤집어씌우려는 명백한 악행을 저질렀지만 그녀가 이렇게 이기적이고 악독하게 변해버린 배경에는, 자신을 견제한답시고 죄없는 딸 소의공주를 정신지체로 만들어 버린 황후와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이유로 자신을 냉대하고 황후의 악행을 묵인 및 방조한 황제가 있었다. 소의공주가 당한 비극만 없었다면 협란은 혜화비처럼 고운 성품에 인덕있는 고위 후궁으로서, 성빈과 롱희같은 핍박받는 후궁들을 비호해주는 자애로운 덕귀비가 되어 평화롭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기도 차지 않는 이유로 냉대하고, 끝내 비참하게 죽게 내버려둬서 그녀의 친정인 궉씨 집안마저도 적으로 돌렸다. 궉씨 집안이 덕빈 일로 황제에 대한 원한이 얼마나 사무쳤는지 황제 한 명을 지옥으로 떨어뜨리기 위해, 황자비 시절 때부터 자신들의 딸 덕빈의 최고 정적으로서 이를 갈고 싸워댄 황후와 손을 잡을 정도다. 그러나 비참하고도 서글픈 사실은 후대의 기록에 황제는 유능하고 완벽한 황제로 남을 거라는 것이다. 황제는 표면적으로 태황을 완벽한 강대국으로 만들었고, 영토를 대거 확장했으니 후대의 평가가 당연히 좋게 남을 수밖에 없다. 1황자 운을 억울하게 처형한 일은 그저 악랄한 황후의 모함으로 이뤄진 실수에 불과하니 황제는 그 점에서도 무고하다고 주장할 것이며, 태황을 박살나기 일보 직전에 이르게 한 책임도 쓰레기인 2황자가 즉위해 폭정을 펼쳤기 때문이라고 알려질 확률이 다분하다. 본인의 관리부실로 당대 내명부가 개판난 것도[* 황제가 정비와 후궁들간의 분쟁을 가라앉히긴 커녕 더욱 부추기면서 결국 내명부를 개판으로 만든 결과, 황제가 가장 후계자로써 원치 않았던 봉림의 즉위에 지대한 공헌을 했으니 엄연히 실책이다.] 어찌저찌해서 본인 대나 다음 대 황제의 치세에서 은닉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황제는 자신을 제외한 모두를 악인으로 만들고, 그들을 두고두고 악인으로 남게 한 것이다. 자신은 무고하고 선량한 척을 하며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기만했던 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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